이창호 9단이 10월 26일 세계 바둑 사상 처음으로 프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11세 첫 승 이후 40년에 걸친 2831전 2000승 1무 830패의 누적 기록으로, 스승 조훈현 9단의 종전 최다승도 넘어섰다. 단판의 폭발력보다 오래 정상권을 지킨 꾸준함을 보여주는 기록이라 승수만이 아니라 대국 수와 승률을 함께 봐야 그 무게가 읽힌다.

이창호 9단이 10월 26일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열린 2026 레전드리그 11라운드에서 최명훈 9단을 상대로 20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 한 판으로 그는 프로 통산 2000승을 채웠다. 세계 바둑 역사상 처음 나온 기록이다.
대국 중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아 '돌부처'로 불리는 그답게, 본인은 좋아하는 바둑을 계속 둘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는 소감만 남겼다. 한국기원은 다음 달 3일 2000승 기념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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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풀어보면 기록의 결이 드러난다. 이창호의 첫 승은 열한 살이던 1986년 8월, 프로 입단 후 40년 만에 2000승에 도달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속도다. 그는 2000년 10월 1000승을 찍었다. 첫 1000승까지 약 14년이 걸린 반면, 다음 1000승에는 26년이 걸렸다. 젊은 전성기에 공식 대국이 쏟아지던 시기를 지나, 뒤로 갈수록 한 판 한 판을 오래 쌓아 올렸다는 뜻이다. 통산 성적은 2831전 2000승 1무 830패, 승률은 약 70.7%다. 2800판 넘게 두면서 열 판 중 일곱 판을 이겼다는 얘기다.
그 전성기의 밀도도 승수 못지않다. 그는 1992년 동양증권배에서 만 16세 6개월에 최연소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메이저 세계대회에서만 17차례 우승했다. 2005년 농심신라면배에서 5연승으로 우승을 이끈 '상하이 대첩'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번 2000승이 더 각별한 건 최다승 기록과 겹치기 때문이다. 종전 프로 통산 최다승은 그의 스승인 조훈현 9단의 1968승이었다. 이창호는 지난해 11월 1968승으로 스승과 공동 1위에 올랐고, 12월 1969승을 거두며 기록을 넘어섰다.
두 사람의 상대 전적도 이제 이창호가 197승 119패로 앞선다. 다만 모든 지표에서 제자가 앞선 건 아니다. 통산 우승 횟수는 조훈현 9단이 162회로 1위, 이창호 9단이 142회로 2위다. 승수에서 스승을 넘어섰지만, 타이틀 획득 수에서는 여전히 조훈현이 앞서 있는 것이다.
스포츠 팬이라면 이 2000승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궁금할 수 있다. 세 가지 기준으로 보면 가늠이 쉽다.
첫째, 누적형 기록이라는 점이다. 바둑은 신체 능력으로 은퇴 시점이 정해지는 종목이 아니다. 50대에도 현역으로 공식 대국을 둘 수 있어, 승수는 폭발적 전성기보다 오래 정상권에 머문 '롱런'의 산물에 가깝다. 승수 증가가 멈춘다는 건 기량 저하보다 대국 수 자체가 줄었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둘째, 개인 기록의 순도다. 팀 종목의 승리는 동료와 나눠 갖지만, 바둑의 한 승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2000이라는 숫자에 다른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적다.
셋째, 승수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같은 2000승이라도 2831전에서 올린 것과 4000전에서 올린 것은 밀도가 다르다. 승수와 함께 대국 수, 승률을 같이 봐야 꾸준함과 집중도가 구분된다. 이창호의 70%대 승률은, 오래 뒀을 뿐 아니라 오래 강했다는 걸 보여준다. 기록의 무게는 결국 이 세 축을 함께 볼 때 제대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