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타율 0.412로 KBO 역사상 유일한 4할을 남긴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오전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선수 겸 감독으로 세운 이 기록은 44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았고, 이승엽을 홈런 타자로 키운 지도자 이력까지 더해 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는다. 4할이 왜 다시 나오기 어려운지 이후 근접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8월 1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3세. 뇌경색 증세가 악화돼 전날 심정지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마지막 4할 타자'가 붙는다.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한 그해, 백인천은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며 타율 0.412를 남겼다. 72경기 250타수 103안타. 30대 후반의 나이에, 그것도 감독을 겸하면서 세운 기록이다.
사실 그는 원년 이전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오래 뛴 선수였다. 국내 무대가 없던 시절 현해탄을 건너 활약하다,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돌아와 첫 시즌을 4할로 장식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간 그의 이력이 '한일 야구를 평정했다'는 수식으로 남은 이유다.
Photo by Matt Dodd on Unsplash
4할은 열 번 타석에 서서 네 번 안타를 친다는 뜻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백인천 이후 이 벽에 가장 근접한 건 1994년 이종범의 0.393, 1987년 장효조의 0.387이었다. 외국인 타자까지 통틀어도 2015년 에릭 테임즈의 0.381이 최고였다. 누구도 0.4를 다시 넘지 못했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를 끝으로 4할 타자가 사라졌다. 백인천의 0.412는 한국을 넘어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나온 사실상 마지막 4할이다.
기록이 깨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투수 분업이 정교해지고 상대를 분석하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한 시즌 내내 4할을 유지할 여지가 갈수록 좁아졌다. 그래서 0.412는 단순한 옛 기록이 아니라,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해마다 증명하는 숫자에 가깝다.
백인천은 타자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1990년에는 LG 트윈스를 이끌고 구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었다. 1996~1997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는 프로 2년 차 이승엽에게 "너는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며 홈런 타자로 방향을 잡아줬다. 이승엽이 1997년 홈런왕에 오른 배경에 그가 있었다.
이승엽 코치는 부고 뒤 "제가 가장 존경하고 감사했던 감독님"이라며 "제 야구 인생에 큰 꿈을 심어주시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추모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한 시대를 빛내주신 감독님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고 애도했다.
백인천의 자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출발하던 지점에 선 사람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오래 뛰다 원년에 돌아와, 첫 시즌부터 누구도 넘지 못한 타율을 남겼고, 이후에는 우승 감독과 스타 육성으로 그 존재를 이어갔다.
4할이라는 숫자가 앞으로 다시 나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매년 리그가 열리고 뛰어난 타자가 나와도 0.4의 벽은 그대로다. 다만 그 숫자가 44년을 버티는 동안,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름은 프로야구의 첫 페이지에 그대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