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이 세운 타율 0.412는 44년이 지난 지금도 KBO 유일의 시즌 4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짧은 시즌과 갓 출범한 리그의 수준 차이가 겹친 원년의 특수성이 이 숫자를 사실상 넘기 힘든 벽으로 만들었다. 8월 14일 별세한 그의 기록은 오늘의 타격 성적을 재는 기준점으로 여전히 쓰인다.
백인천 전 감독이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남긴 타율 0.412는 44년이 지난 2026년까지 KBO리그에서 단 한 번도 재현되지 않았다. 그가 8월 14일 향년 83세로 별세하면서 이 기록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왜 아무도 넘지 못했는지를 보면, 이 숫자가 단순한 타격 재능만의 산물이 아님이 드러난다.
먼저 시즌의 길이가 달랐다. 원년 리그는 팀당 80경기 체제였고, 백인천은 71경기에서 250타수 103안타로 0.412를 찍었다. 250타수는 지금 기준으로는 반 시즌 남짓한 표본이다. 타수가 적을수록 극단적인 타율이 나오기 쉽다. 지금처럼 정규시즌이 144경기로 늘어난 뒤에는, 4할을 시즌 끝까지 유지하려면 훨씬 긴 구간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해 그의 성적은 타율만 높았던 것이 아니다. 출루율 0.497, 장타율 0.740으로 OPS는 1.237에 달했다. 타율 1위에 홈런 2위, 타점 2위까지 오른 전방위 지배였다.
리그의 수준 차이도 컸다. 백인천은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약 20년간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고, 그곳 통산 타율은 0.278이었다. 일본에서 2할7푼대를 치던 타자가 갓 출범한 한국 리그에서 4할을 넘겼다는 것은, 원년의 투수 수준이 그가 상대해온 무대와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를 보여준다. 리그가 성숙하고 투수의 기량이 올라가면서 이런 격차는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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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백인천은 원년 MBC 청룡에서 감독과 타자를 겸했다. 20년 가까운 일본 생활을 마치고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돌아와, 첫해에 곧바로 타격왕에 오른 셈이다. 감독으로 라인업을 짜면서 자신을 지명타자로 넣어 그 성적을 낸 점은 지금 시선으로 보면 낯설 만큼 이례적이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도 그는 오래 현장에 남았다. MBC 청룡을 시작으로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등 여러 구단의 지휘봉을 잡았다. 원년의 스타에서 지도자로 이어진 이력이라, 한국 프로야구의 초창기와 성장기를 함께 통과한 인물로 꼽힌다. KBO가 그의 장례를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치른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4할은 이제 현실적인 목표라기보다 하나의 기준선에 가깝다. 타격이 폭발했던 2010년대 중반, 타고투저로 불리던 시기에도 이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최근 가장 가까이 간 타자는 2015년 에릭 테임즈로, 타율 0.381에 47홈런을 쳤다. 다만 테임즈는 백인천보다 훨씬 많은 경기와 타수를 소화하고도 4할에는 닿지 못했다. 표본이 길어질수록 4할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성적이다.
그래서 요즘 어떤 타자가 시즌 초반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면, 중계와 기사는 어김없이 백인천의 0.412를 소환한다. 확인할 지점은 명확하다. 시즌이 절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 때 그 타율이 얼마나 버티는지다. 원년의 짧은 시즌과 지금의 144경기는 조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보다 어느 구간의 기록인지를 함께 봐야 한다. 44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숫자가 왜 특별한지를 가장 잘 말해준다.